세속의 날짜로는 4월 3일 토요일.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 민족들은 하루의 시작을 해가 진 후부터 계산하였고, 이 관습이 아직까지도 가톨릭 교회에 내려오고 있으므로, 토요일 밤은 이미 가톨릭 교회 전례상으로는 성토요일이 끝나고 예수 부활 대축일이 온 것이다.
이 시간에 전세계 가톨릭 교회에서는 부활 성야 미사를 하게 되는데, 미사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빛의 예식 - 부활 초를 축복하고 부활 초에 불을 댕긴 후 이를 모든 교우들이 나눠갖는다. 그리고 부활 찬송이 울려퍼진다.
2.
말씀 전례 - 구약에서 총 일곱 개의 독서를 봉독한다.
3.
세례 예식 - 새로운 형제/자매들이 세례를 받거나 세례수를 축복한다. 또, 성수를 축복하고 우리 모두의 세례 서약을 갱신한다.
4.
성찬 전례 - 평소처럼 성찬 전례를 거행한다.
집 떠나왔기 때문에 여기서 보내는 성주간은 편하게 보내나 싶었으나, 나도 저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을 일을 저지르고 만다. 이곳은 전례 봉사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많은 전례 봉사자를 필요로 하는 성주간이 올 즈음 되면 보름 전부터 아래와 같은 종이를 성당 입구에 붙인다. 이곳에 자신이 참여하고 싶은 곳에 자신의 이름을 쓰면 된다.
(주의! 여기에도 Easter Vigil - Holy Saturday라고 잘못 찍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부활 성야 미사를 성토요일 미사라고 잘못 말하는 경향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톨릭 교회 전례상으로는 부활 성야 미사가 시작되는 시점은 이미 성토요일이 지난 시점이다.)내 눈에 바로 들어오는 공란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부활 성야 제3독서! 부활 성야 미사 때는 구약에서 총 일곱 개의 독서를 봉독한다. 사목상의 이유로 서너 개의 독서만 봉독해도 되지만, 어떤 경우에도 제3독서는 반드시 봉독되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독서이다. 동시에 제3독서는 이어지는 화답송과의 매끄러운 연결을 위해 독서 후 'Verbum Domini(주님의 말씀입니다)'를 외치지 않는 독서이다.
아무튼 보자마자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부활 성야 미사 때까지 거의 보름에 가까웠던 기간동안 계속 고민하고 후회했다ㅋㅋㅋ '이름 쓰지 말걸.' 하면서. 우리 말로 봉독하라고 해도 잘 하지 못할 판에 이걸 영어로 봉독해야 하는데, 내가 뭘 믿고 하겠다고 했는지 나의 속을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좋다! 연습에 연습이다. 제3독서에 해당하는 탈출기 말씀을 우리 말로, 그리고 영어로 각각 필사를 했다. 그리고 몇 번이고 연습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할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미사는 저녁 9:00에 시작하는데, 나는 여섯 시간 전인 오후 3:00에 와서 미리 연습 시작했다. 다행히 수녀님과 3독서 후 화답송 선창자가 있어서 이들과도 호흡을 맞췄다. 성전의 모습도 부활 성야를 기다리는 바로 그 모습답게 세례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미사!
모두가 긴장하는 가운데 빛의 예식이 지나고, 말씀 전례 시작. 그리고 나의 순서.
나는 무사히 끝마쳤다! 실수 없이 잘 끝났을 때의 기쁨이란~ㅋㅋㅋ
여기 성당 수녀님의 노랫소리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건 수녀님께서 부르는 제6독서 후 화답송.
오랜만에 보는 신부님의 백색 제의. 기쁨을 뜻하는 색이다.
이어서 세례 예식 때에 세례를 받는 새 형제/자매들.
미사의 전례 음악을 담당하는 앙상블.
기도하고 있는 이 곱슬머리 친구는 Dan이라는 친구인데, 내가 독서 읽는 동안 나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주었다. 그러니까 위에 있는 첫 번째 동영상은 바로 이 친구가 찍어준 것이다.
이 미사의 진행을 보고, 한국의 성당(대개 서울대교구 성당)이 다시 한 번 생각해야겠다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여기 성당은 모든 예식을
절대 서두르며 진행하지 않는다. 그리고
생략이란 것을 모른다. 아래가 부활 성야 미사 순서 중에서 시간을 많이 잡는 순서인데, 한국과 비교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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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찬송 -
여기서는 긴 부활 찬송 선포 - 한국은 대개 짧은 부활 찬송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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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전례 -
여기 성당은 구약의 일곱 독서를 모두 봉독 - 한국은 대개 서너 개의 독서만 봉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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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예식 시작 -
성인호칭기도를 바침 - 한국은 (명동 성당 포함) 성인호칭기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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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식 -
이날 열 명이 넘는 예비자가 세례를 받음 - 한국의 상당수 성당은 시간 많이 걸린다는 이유로 세례수만 축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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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기도 -
이날의 감사기도는 가장 긴 제1양식을 하였음 - 한국은 1년 365일 감사기도 2양식만 쓰는 성당이 대다수
예비자만 열 명이 넘는 미사였지만, 꿋꿋하게 할 건 다 한 이날 미사는 세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미사는 기도이며, 기도는 좋은 것이므로 굳이 빨리 끝내려고 발버둥치지 않는다. 이게 이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렇게 진행된 미사의 끝은 파견성가 Regina coeli, 부활의 기쁨으로부터 나온 박수소리, 그리고 서로 인사하면서 외치는 'Happy Easter!'
미사 후 성전 입구에서 와인 한 잔씩 하고 있는 사람들.
본당 수녀님. 겉보기에도 참으로 날카로워보이는데, 실제로도 진짜 무서울 정도로 똑부러지는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