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1일
정남이에게
정남이에게
요 며칠 동안 마음이 썩 편치 못해서 아무래도 그간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질 것 같구나. 평상시라면 좀 더 참았을텐데, 시험을 코앞에 둔 시점에 공부가 지나치게 안되고 있어서. 그래서 마음을 잡기 위해 이렇게 다시 너의 미니홈피 방명록을 찾았다. 그 많은 엘리 단원 중 너한테 이 이야기들을 하려는 것은 정남이 너하고 그 동안 이러쿵 저러쿵 장난도 하면서 나한테는 어쩐지 가깝게 느껴져서인데다가 정남이가 마음이 언제나 열려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이다. 결정적으로 최근에 엘리에서 있었던 일 덕분에 다시 정남이하고 몇번이나마 통화가 된 것도 있고.
며칠 전 서울대 음대 가톨릭 기도모임 클럽에 루치오 형제님이 엘리 공연 홍보글을 남겼다. '이분이 여길 어떻게 알았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나의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마우스를 클릭하였고, 그래서 나타난 포스터의 사진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왜 그리 복잡하던지...... 처음에는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답글을 달려고 했다가 이내 망설이더니 곧 포기하고 그냥 지나쳤다. 포스터 출연 인원 15명 중에서 무려 12명이 아는 사람이라는 점. 그 포스터가 음대 기도모임 게시판에 올라왔다는 점. 음대 기도모임에 소속된 음대 사람들 중 상당수는 나와 엘리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점. 많이 복잡하더라.
아무튼 너를 직접 만났었다면 했을 이야기들을 이렇게라도 하고 싶구나 - 니가 벌칙으로 삼겹살과 소주를 사준다면 이 이야기가 좀더 자세하게 전달될 수 있겠지ㅋㅋㅋ(나 진짜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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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몇몇 엘리 사람들이 나 보고 싶다고 명동에 놀러오라고 말씀하시곤 해. 그런 말씀이 고맙긴 하지만, 난 더 이상 명동 성당에 갈 수 없어.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지. 왜냐하면 내가 없어진 이후로 엘리의 분위기는(내가 바깥에서 보기에는) 엄청 좋아졌거든. 무난하게 발표회 준비도 잘 이루어지는 것 같고, 다른 청년 단체와도 잘 화합하는 것 같고, 내가 있던 6년 동안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진풍경들이야. 특히 내가 지휘자로 있었을 넉 달 동안에는 뭔가 찬 바람의 기운만 감돌다가 내가 나간 후에 단체의 분위기가 이렇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그 전까지의 그 불편했던 분위기의 책임은 나한테 돌아오기 마련이거든.
그렇다고 내가 엘리를 잘 이끌고 있는 엘리 사람들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야. 진짜 비난받을 할 사람은 내가 보기에는 나 자신이야. 네가 내 싸이 방명록에 쓴 글에 내가 장황하게 답글 달아놓은 것 봤지? 거기에 보면 '내가 엘리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의 90%는 참회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된 부분이 있어. 왜냐하면 막상 나오고 나서 얼마 후부터는 시간이 갈 수록 나의 문제점들이 더욱 많이 보이기 시작했거든.
내가 미사를 담당하는 성가대의 지휘자였다면 신경써야 할 부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기도요, 둘째는 전례. 기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은 나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실천하려고 노력이라도 했어. 그러나 전례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잘 한 구석이라고는 도통 찾아볼 수가 없어. 차라리 내가 전례를 모르는 지휘자였다면 미안한 마음은 좀 덜했을거야. 하지만 나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례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을 공부한 적이 있었고, 교육도 몇 번 받았어. 미사 시간에 가장 중요한 성가가 무엇이며, 가장 덜 중요한 성가가 무엇인지. 반드시 노래로 해야 하는 성가가 무엇이며,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는 성가가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어. 어떻게 하는 것이 원칙에 부합하는 미사 전례인지를 이미 머릿속에 숙지하고 있는데까지는 성공한 지휘자였지. 문제는 실천으로 옮기지 않은 데에 있었어.
청년 미사가 되었든 어린이 미사가 되었든 교중 미사가 되었든 이들의 핵심은 '미사'이지 그걸 포장하고 있는 '음악'이 아니야. 미사 전례는 현존하는 예수님을 직접 바로 앞에서 만나는 예식으로서 일정한 절차가 있는 가톨릭 교회의 공식 의식이지. 수천년 동안 내려온 '미사'라고 하는 의식은 전 세계 가톨릭 교회가 모두 똑같은 방법으로 진행하게 되어서 바로 이 점이 가톨릭 교회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해. 현존하는 예수님과 만나는 자리이므로 미사에서 사용되는 기도문들을 자세히 보면 그 단어 하나하나가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고 그것을 통해 일정한 형식대로 움직여지는 전례가 딱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아름다운 것이며, 모든 기도문들이 깊은 묵상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음을 알게 되지.
나의 문제는 미사에 임할 때, 엉뚱한 생각을 하나 추가로 가지고 있던 점이야. 바로 생활성가라고 하는 음악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하는 또 다른 바람을 갖고 있었던 것이지.(이 바람은 그러면 또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는 나중에 삼겹살 먹을 기회가 있으면 그 때 장황하게 이야기하기로 하고) 생활성가 관련 동호회 운영진으로 활동해본 적도 있던 나는 생활성가가 알려지기 위한 나름의 방법(혼성4부-개신교 CCM 그룹 옹기장이에서 힌트를 얻음)을 생각해내고 그걸 실천에 옮기게 되었어. 생활성가 자체만 보면 나름 괜찮은 발상이었는지는 몰라도, 미사를 생각한다면 나는 완전히 맥을 잘못 짚은 격이 되었지. 위에 언급한대로 미사에 쓰이는 음악은 모두 전례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는데, 나는 그 음악을 목적으로서 사용했기 때문이야. 결과적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 듣기 좋은 음악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람 듣기 좋은 음악을 한 셈이 되었지.
내가 음악 이전에 올바른 전례 정신을 단원들에게 잘 일깨우고 단원들이 전례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여 그것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면 음악 때문에 갈등을 가지는 일은 없었을거야.(혹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더라도 나는 지금보다는 떳떳했겠지.) 왜냐하면 음악의 질이 조금 떨어져도 미사 전례의 원칙만큼은 잘 살렸다는 점에서 큰 미련이 없었을 것이고, 그것에서부터 느껴지는 잔잔한 아름다움과 미사를 통해 주는 주님의 사랑을 느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을테니까. 전례에 관심이 많아지다보니 음악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그 자리를 마음에 안드는 단원 사랑하려는 노력으로 채운다면 그거만큼 잘 되는 성가대가 어디 있을까. 내가 있는 동안 발생했던 음악적인 갈등들, 아니 그 이전 시대 내가 모르던 시절부터 내려오던 그 많은 음악적인 갈등들 역시 미사 전례에 핵심을 두고 생각했다면 최소 80%는 모두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봐. 그러고보면 청년성서모임 홍인식 신부님 말씀이 딱 맞더라. 아무리 엘리에서 젊음을 바친들 뭔 소용이 있겠나? 그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해야 그 젊음이 보람있는 것이지. 시작기도를 하고 연습을 하였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했던 음악은 하느님을 향한 음악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음악이었고 하느님에 의한 음악이 아니라 사람에 의한 음악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진작부터 주님 듣기에 좋은 음악을 찾는 데에 주력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구나.
아무튼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면 바로 이 이야기였어.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용호나 준하 형, 지훈 형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혹시 길 가다가 마주치지는 않을까 하며 겁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참 생각해보니 나 역시 크게 다른 바는 없는 사람이더군.
도대체 삭막했던 지난 봄의 갈등 관계와 전례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다면 역시 나중에 삼겹살과 소주가 내 입에 들어갈 때 말해주지 ㅋㅋㅋ(너 이거 절대 그냥 지나치면 안된다. 넌 나한테 엄청난 실례를 범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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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이야기를 한참 썼고,
요즘 느끼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면 누군가가 일을 조종하고 있다는 점이야. 생각해보니 엘리 그만 둔 이후로 엘리는 물론 명동 성당 사람을 제대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어, 생각해보니 진짜 그러네. 정말 무섭다.
지난 6월 말에 정화, 정남이하고 만날 때도 사실 만나지 못할 뻔 했다는 거 기억나니? 둘 중 누군가가 아파서 못 만날 것 같다고 약속 시간 다 되어서 연락하는 것을(이거 봐! 반성들 좀 해. 약속 시간 다 되어서 약속 취소하는 사람이 어딨냐?) 어찌어찌 해서 겨우 만나고, 그 이후에는 더 못 만나고. 아무튼 이야기가 좀 새긴 했지만, 명동 성당 사람 만난 기억이 도통 없다.
이번에 우리 오랜만에 만나려다가 계속 실패한 것도 사실 좀 이상한 생각이 많이 들어서.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그냥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어쩐지 느낌이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가 일을 방해한다는 느낌이 들어ㅋㅋㅋ
그러니 기도 열심히 합시다. 기도 열심히 해서 성령님을 부릅시다^^
# by | 2007/12/11 01:27 | 트랙백 | 덧글(0)













